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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like a cat, Smile like a flower
by 소년 아
봄의 남산
남산부근, 2004. 1. 18 타인 님의 글에서 엮습니다.


2007년 1월 1일 만난 해파리들


2007년 이맘 때에도 남산에는 벚나무 가지가 늘어지도록 꽃이 만발했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눈처럼 쏟아졌다. 자동차의 창문을 조금 여니 꽃향기와 여린 풀내음이 와르르 몰려와 나는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아버지, 꽃이 눈 같아요!" "춥다, 창문 닫아라." 뒷좌석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 말씀에, 나는 조용히 창문을 닫고, 차창 너머 무성영화 속 장면처럼 햇살에 부서지는 벚꽃을 바라보았다. 


첫 월급을 들고, 맛있다고 소문난 용산 한남동 주택가 틈바구니 어딘가의 스테이크 집을 찾아가면서,


그렇게 꽃이 예뻐 울었더랬다.


도무지 음식을 넘기지 못하셨다. 겨우 잡수셨다 싶으면 게워내시기 다반사였다. 죽, 미음, 음식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고열량 영양 음료도 넘기시기 어려웠다. 아버지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든 것을 토해내는 느낌이었다. 게우는 것을 끔찍하게 힘들어 하셨고, 한 차례 구토하시고 나면 식욕은 커녕 몸을 가누지 못하실 정도로 탈진하셨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음식을 드셨고, 나와 어머니는 음식을 드렸다. 먹어야 했다,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어느 날 아버지는 스테이크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고, 나는 한남동의 쇠고기 스테이크 집을 찾아냈다. 아버지가 무언가 잡숫고 싶어 하신다는 것 만으로도 기뻤다. 


2006년 가을, 아버지의 건강이 갑자기, 그리고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종합검진, CT촬영과 MRI, 신경검사도 소용없었다. 뇌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샅샅이 훑었는데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통증학과를 찾아갔더니, 자꾸 아프다면 그 쪽의 신경을 죽여서 통증만 없애자는 얘기를 했다. 50 평생 잔병치레 한 번 없으셨던 아버지였다. 


나는 새벽이면 깨었다. 예전같으면 먼저 리큐에게 밥을 주고 세수하러 갔겠지만, 늦여름 무렵부터는 일어나자마자 안방의 침실에 계시는 아버지께 갔다. 송곳으로 후벼파듯 아프다는 아버지의 허리와 등을 주물러드리고 있으면 어느 새 동이 터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조금 주무셨다. 내가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였고, 씻고 정리한 후 아버지께 가서 아픈 부분을 쓰다듬어드리면 그제서야 눈을 붙이셨다. 기도하며, 노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곁에 있다가 주무시면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잠에서 깨셨다. 


너무 아프셔서, 새벽부터 새벽을 하얗게 새우셨다. 참다 못해, 새벽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자고 있는 딸 깨우는 것이 미안해서. 그렇게 가을이 갔다.


겨울, 아버지는 다시 종합검진을 받으셨다. 의사는 내시경 검사 중 위에서 떼어낸 조직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입원치료를 권유했다. 나와 어머니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을 동원해서 가장 빨리 비는 병실을 예약했다. 위벽 겉에서 자라난 암은 이미 위벽을 뚫고 안쪽까지 번져있었다. 겉에서 생겨서 알 수가 없습니다. MRI 검사를 두 번이나 했는데, 말이 됩니까. 네, 말이 됩니다. 내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1-2주 후 PET 검사를 했다. 뼈에도 암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병원에 들러 아버지를 뵙고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 때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다시 아버지를 뵙고 재워드린 후 집에 갔다.

3월에 입사했다. 강남 삼성역 근처에 위치한 회사에서 먼저 합격통보가 왔고, 나는 충무로에 위치한 지금의 회사의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다른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거짓말로 전화를 한 뒤 며칠 후 면접을 치르고, 다시 며칠 후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아버지가 입원하신 병원이랑 지척이라 수시로 왔다갔다 할 수 있단 사실이 가장 기뻤다.


첫 월급을 받고 처음으로 외식시켜드리는 날이었다. 그토록 어여쁜 사월의 봄날이었다. 


벚꽃 지던 날부터 한 달 후 어느 화창한 날, 나는 베이징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국해라. 지금. 바로." 여동생은 대답했다. "알았어. 지금 갈게." 장미가 화려하게 나고, 연두빛 이파리들이 두터워지던 오월, 내 아버지는 뇌내출혈로 돌아가셨다. 잡수시면 나으실 줄 알았고, 버티시면 사실 줄 알았고, 그토록 희망밖에 보이지 않던 봄날이었다. 

그토록 간절한 봄이었다.


by 소년 아 | 2009/04/13 00:18 | LOV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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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지녀 at 2009/04/13 01:15
지금은 그 해의 그 곳 보다 더 아름다운 곳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
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4/13 15:24
아마도 그러하시겠지요:) 고맙습니다, 지녀 님.
Commented by ☆션☆ at 2009/04/14 12:55
어제도 덧글을 남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돌아서고 말았는데...

그냥 다 지워두고....



아버님, 지금은 평안한 영혼의 안식을 취하고 계실꺼에요.
아님도 평안하셔야해요.
Commented by 소년 아 at 2009/04/15 10:51
고맙습니다:) 션 님처럼 걱정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은 행운아라서 언제나 행복합니다:D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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