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터 공부방의 아이들은 반짝반짝 눈동자를 빛내며 예고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바라보았다. 바이올린 켜는 루돌프는 처음 봤어! 한 꼬마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작고 까만 얼굴을 장난기 가득 담고 달려들기도 하고 수줍음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가짜인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자신들의 소망을 알고 있을까. 어떻게 자기들이 누구네의 언니고, 동생이고, 형인 것을 알고 있을까, 신기해하는 아이들.
문봉동에 공장이 많아서 놀 곳이 없어요. 좋은 건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사가고 싶어요. 게임에서 져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나를 싫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작고 귀여운 소망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내려간 짧은 문장들.
헤어지면서,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부터 끌어 안았다. 또 온다는 약속은 하지 못했지만, 건강하고 잘 지내라고 말해주었다. 발치에 올망졸망, 내 허벅지 께밖에 오지 않는 작은 키의 아이들은 말랐다. 혹은 포동포동했다. 한 명 씩, 숫자 다섯 세어가며 안아주는데 어쩐지 눈물이 나서 자꾸 웃었다. 자꾸 웃으니 코 끝에 끼운 루돌프 빨간 코가 자꾸 떨어진다. 그마저도 깔깔대며 즐거워해주는 아이들은 너그럽다. 처음에는 포옹에 어색해하던 아이들도 이내 팔을 뻗어 나를 안는다. 그 마음 열리는 순간에, 아이들의 가녀린 힘과 따뜻함에 감동한다.
빨간 자동차에 빨간 옷을 입고 공부방으로 향하는 길 내내 아이들의 이름과 소망, 특징들을 외우시던 산타 님. 아이들을 달래어 우리를 도와주시던 공부방 선생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 날 발견한 일산의 카페 터치아프리카
예만의 부드러움에 추위와 허기를 잊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야근을 하다가 달려간 현스터 님의 솔로파티. 네 마리의 고양이와 미선 님과 아리따운 아가씨 한 분, 하이시크 님, 길시언 님, 멜로우 님, 도비 님께서 나를 맞아주셨다. 음식을 사러 가신 다른 분들을 기다리며 가져간 초콜릿과 포인세티아 화분 두 개를 테이블에 놓았다.
내 가죽 부츠를 열렬히 사랑해주던 슈(男), 그리고 그의 친구 류(男)
(어쩐 일인지 파티 사진이 고양이 사진 한 장이라니;)
온라인에서 알게 된 분들을 오프에서 뵙는건 스무살의 오도루 멤버모임 이후 처음이다. 그 때보다 나는 나이가 더 들었고, 많은 일을 겪었다. 새로운 분들을 만나며 이전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 묘했다. 밤 새도록 만화얘기와 호모얘기를 하다가(남자 분들이 많이 계신데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엣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이 또한 신선하다) 보드게임을 하며 첫 차를 기다렸다.
도비 님께서 주신 선물을 받아들고 룰루랄라 졸다가(...) 연신내 역에서 내려 걸어오는 새벽 길, 찬 공기 사이로 후후 입김을 불어내며 달려온 집, 우편함에는 깜짝 놀랄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놓여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훌륭한 음악을 들으며 훌륭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야근에 밤샘에 멍한 머리로도 좋았다.
을지로 어느 건물의 크리스마스 전광판
아침 8시가 되자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세수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후 12시에 깨어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새로 나신 예수님을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잔뜩 만나고, 토마스(중 3)의 멋진 섹소폰 연주도 듣고, 요한(중 3)이의 귀여운 모습도 보고. 예쁘고 영리한 클라라(고 1)와 로사(고 1)의 미소에 나도 방긋방긋 웃고. 미사가 끝난 후 악기를 짊어지고,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아주 작고 다정다감한 카페 온 더 힐로 향했다. 광화문 매드 포 갈릭 근처의 이 카페에는 두 명의 아가씨가 교대로 근무를 하는데 그 중 한 아가씨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In my Place - ColdPlay -
브릿팝을 좋아하고 미소짓는 모습이 예쁜 아가씨는 테이크아웃 컵 띠지(갈색 골판지 부분)에 곡 명과 밴드 명을 적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 날 내가 받은 음악은 콜드 플레이의 in my place. 음악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지는 길에 쿠키를 선물로 받았다. 그 쿠키는 기말고사 준비로 그 날 미사에 오지 못했던 클라라에게 주었다.(요한이 잘 전해줬다면 말이다ㅎㅎ) 그 때 내가 만났던 아가씨는 근무 시간이 아니어서 다른 분께 함께 나눠드시라고 도너츠를 드렸다.
카페를 나서는데 여전히 바람이 씽씽 불었다. 하루 종일 루돌프 뿔 머리띠를 하고, 미사도 가고, 카페도 가고, 버스도 타고 광화문과 서대문 일대를 걸어다녔는데 이 머리띠는 꿈쩍도 안하는게 신기할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아주 조금 외로울 만큼 바람이 불었다.
버스를 타고 마리아수녀회 소년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캄캄했다. 새로 생긴 아우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들었던 것 보다 똘똘하고 예쁘게 생긴 아우님과 이것저것 나누어 먹고, 1월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아우님은 어머니와 내가 올 해부터 후원하기 시작한 딸이다. 이 곳에는 부모가 다 계신 아이도 있고, 미혼모의 아이도 있다. 낙태하겠다는 아이들을, 수녀님들이 길러주시겠다고 사정사정해서 태어난 아이들도 많다.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했을 생명들이 건강하고 밝게 웃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밤 눈 - 김광규 - (어느 지하철 역에 붙은 시화)
(아우님의 사진을 포스팅에 넣고 싶었지만, 아직은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일단은.)
외할머니 생신이었던 27일 밤, 시골집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때며 바빴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슬픈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던 한 해. 아직도 외롭고 외로워서, 찬 바람이 몰아치고 토할 듯이 아픈 날이면 너무나 그리운 마음이 눈물처럼 새어나온다. 그렇게 힘겨워도 행복한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다가오고, 나는 위로 받는다.
길게 적어내렸지만,
사실 수 천의 말보다 그저 한 마디면 충분한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사랑해.
도너스캠프,
기쁨터,
공부방아이들,
크리스마스파티,
나눔,
우린버림받지않았어,
너는버림받지않았어,
아주가끔,
아주조금,
외로워도괜찮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