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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hes.byus.net by 소년 아
그녀가 죽었다. 그는 슬프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했고, 그는 그녀로 인해서 세상을 알았다. 그는 그녀를 통해서 행복과 좌절과 슬픔을 알았고, 소유욕을 배웠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너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말거야." 그녀가 말했다. 그는 성공이란 단지 두글자로 이루어진 쓰기 쉬운 단어라고만 느꼈지만 그래도 꼭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세상 밖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세상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눈치챘고 더 멀리까지 그녀의 생각과 시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가 성공하고 싶으면 당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말이 옳은 쪽에 가까웠지만 여하튼 그는 성공만이 지상목표일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녀를 향한 입을 다물고 귀를 닫았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그의 심장에 사슬이 꿰어져있었다. 사슬의 끝은 그녀의 눈에 매여있었고 그것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슬 때문일까, 그녀는 그가 꽁꽁 숨겨놓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불 위에 앉아 이 사슬을 스스로 꿰었는지 혹은 다른 누군가가 몰래 꿰어놓고 갔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마음은 그의 깊은 안쪽에 있으니 결국 자신이 꿰었다는 결론에 이르르자 사슬을 맨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문이 느껴지기 전에 먼저 치밀어오르는 자괴감에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웅크리고 앉았다. 아무 것도 토할 수 없었다. 그 후부터 자꾸만 잠이 왔다. 스스로 매어놓은 예쁘고 반짝이는 착한 사슬은 그를 상당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잠을 자지 않을 때에는 머리 속에 끊임없이 뭔가를 담았다. 구멍이 뚫린 욕조처럼 담아도 담아도 끝없이 들어갔고, 그만큼 새어나왔지만 그는 달리 무엇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흥분할만한 작은 크기의, 때로는 작지 않은 크기의 죄악을 저지르면서 마음을 마모시켜 사슬을 벗어나겠다고 마음먹은 어느 날, 그녀는 새하얗게 날이 선 칼을 그에게 들이댔다. 식칼의 끝은 날카로웠지만 뭉툭하게 보였다. 그는 칼을 휘두르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그는 엉엉 울었다. 그는 자신이 매어놓은 사슬이 그녀의 눈에서 피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이 마모되기 전에 그녀의 눈이 먼저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현존하는 자신이 그녀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의 존재를 없애 사슬을 풀어주자고 결심했다. 그녀가 쥔 칼은 두려웠지만 자신이 쥔 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몸의 통증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명의 무게와 죽음의 가벼움과 순종과 혁명의 모순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자조할 수 조차 없는 자만심이 그를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따뜻하고 강인했지만 불안정했다. 그는 조금씩 그녀의 불안정함을 못본 척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여전히 그녀가 그의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불안정함은 그가 그녀 안에 머물러 있자 점점 사그러들었고, 그는 점점 불안정해졌다. 몇해가 지났을까. "너의 불안정함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 내 세상에 그런건 필요 없어." 그녀가 말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땅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 내가 길을 만들어줄게. 너는 그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거야." 상냥한 그녀의 손 끝에는 붉은 에나멜이 빛나고 있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그녀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너는 길도 모르잖아." 나도 길 만드는 법 쯤은 알고 있어. 나도 길 찾는 법 쯤은 알고 있어. 그는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손톱에 발라져있는 그 색이 싫어요." 그녀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며 그는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새 불안정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머물러있지 말았어야 했어, 그는 세상 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불안정함은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녀의 실망어린 목소리와 비난의 시선이 그의 등을 할퀴었다. 세상 끝에서 그의 불안정함은 그가 자신의 길과 그녀의 길을 구분할 수 없도록 했고, 그로하여금 길을 만들기 위해 힘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도록 했다. 길도 다리도 없는 절벽 끝에 멍하니 주저앉아있던 그는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은 나침반, 그리고 스스로의 목표. 절벽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그의 불안정함은 날아가지 않기 위해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안에 웅크리고 숨었다. 벌레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돌았고, 그는 손으로 낚아채 짓눌렀다. 안쓰럽고 불쌍하여 눈물이 흘렀다. 슬프지는 않았다.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녀는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손톱을 손 끝에 매달고 그를 찾아왔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미소가 반가워 나침반을 만들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난 항상 너에게 자유와 성공을 주고 싶었단다. 도움이 되고 싶었어. 너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니 유감이야. 항상 너를 위해 살았는데. 아무 것도 없어도 너를 위해 모든걸 줬잖니."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몰랐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고개를 떨궜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항상 해왔잖아, 네가 잘 못했잖니, 내가 그렇게 도와줬는데도." 그는 게을렀던 자신을 책망했고, 그래도 지켜봐준 그녀가 고맙게 느껴졌다. "이제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어디 한 번 해보렴. 네 인생이잖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손을 뻗어 그의 심장을 쥐었다. 살색 손톱이 떨어져나가고 붉은 에나멜빛이 근육을 파고들었다. "모양새가 흐트러졌구나.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지." 낡고 약해져있던 사슬의 연결고리를 다시 단단히 묶으며 그녀는 말했다. 그는 무의식 중에 눈에 들어온 붉은 것을 그의 심장에서 떼어내었다. 근육도 함께 떨어져나가 쓰라렸다. 흐르는 핏물 위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그녀는 온 몸의 털을 세우며 화를 내며 말했다. "미친 새끼!"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절벽 끝에 앉아있었다. 만들다 만 나침반을 손에 쥔 채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사슬은 끊겨있었다.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올라앉는 발자국이 피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가 죽었어. 그런 느낌이 들어. 어떻게? 내가 죽인걸까?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뱃속에서 시큰한 것이 몰려올라와 토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 피를 뱉어내고 있을 때 절벽 아래서 누군가 그의 바지 밑단을 잡아당겼다. "다리를 만들고 있어. 같이 만들지 않을래." 한 소년이 절벽에 매달린 채 말했다. 그가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소년이 다시 말했다. "당신과 함께 만들고 싶어. 당신은 내게 도움이 될거야." 바람소리에 섞여 소년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나도 당신의 도움이 되고싶어." 그녀가 죽었다. 아니 죽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다. 그는 소년과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더딘 속도로 길이 이어졌지만 이 전의 미로와는 다른 단단하고 마른 길이었다. 그의 나침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그의 목표는 여전히 허공에 떠돌 뿐 구체화되지 않아서, 그는 종종 소년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사과했지만, 소년은 그런 때마다 툴툴거렸다. "그런 일로 사과할 필요 없어. 나는 다리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뿐 나침반을 빌려달라고 한 게 아니야. 그냥 지금 당신이면 된다고." 가끔 절벽 아래를, 그리고 더 높은 절벽 위를 바라보았다.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과 안개 사이로 다른 이들의 길이 보였다. 가끔 그녀가 원했던 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 길도 보였고, 튼튼해보이는 철로도 보여, 그럴 때마다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생각이 깊어져 그 안에 웅크리고 있던 불안정함이 꿈틀대며 그의 핏줄을 타고 그를 바싹 죄어오면 그의 옆에 앉아있던 소년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는 그 안에 남아있는 그녀의 불안정함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바라볼 용기는 없었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없었지만 찢어버릴 수도 없었다. "괜찮아." 그녀가 죽지 않은 것이 아닐까, 머뭇머뭇 입을 연 그에게 소년이 말했다. "그녀는 죽었어. 그녀가 죽지 않아도 당신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소년의 말은 부드러운 깃털처럼 그를 간지럽혔다. 그는 소년의 손을 잡았다. 소년은 힘주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죽었다. 슬프지는 않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죽지 않았다고 해도 울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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