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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hes.byus.net by 소년 아
시지푸스(Sisyphus)는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누설했다는 이유로 신들의 저주를 받아 커다란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했다. 그러나 언덕 꼭대기에 도달하면 그는 기운이 떨어져 바위를 놓치고 만다. 바위는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내려간다. 같은 일을 계속반복함으로써 시지푸스는 영원히 바위와 싸워야 했다.
그런데 미국의 철학자 Richard Taylor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시지푸스의 신화에 매우 독창적인 질문을 제기한다.(Taylor, 1984) 시지푸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그의 운명은 어떤 방식으로 바뀌어야만 하는가? 첫 번째는 아무런 소득 없이 끊임없이 같은 바위를 언덕 위에 갖다 놓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로 하여금 다른 바위를 언덕 위로 밀고 가게 해서 근사한 사원을 건설하도록 하는 것이다. Singer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1995)라는 책에서 Taylor가 시지푸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두 가지 방식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우리는 객관적으로 가치있는 목적을 위해 일함으로써 의미있는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고 세계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사원을 짓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을 상징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객관적인 어떤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 것, 즉 우리의 동기에서 의미를 찾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것이 가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욕구이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의미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성공을 객관적인 무엇으로 정의하느냐, 아니면 주관적인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우리의 인생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단 인생의 주관적인 의미가 단지 자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나'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성공방정식도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이고, 일단 내가 있어야 비로소 주관이건 객관이건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우리는 '내가 빠진 근대화', '압축 성장'의 파국을 경제침체를 통해서 충분히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나'라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아의 심연(深淵)으로 내려간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아의 탐색은 멀리는 아닐지언정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자아는 그 여행에서 만들어진다. 청년기의 자기탐색, 동인, 김도환, 정태연, 제 5장 똑똑하면 성공하냐? 中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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